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크렘(Crème)은 감정을 비누에 담는 브랜드다. 하루의 끝, 손끝에서 시작되는 위로 같은 것. 크렘의 비누는 마치 유리 조각처럼 투명하고 단단하다. 빛을 머금은 채 손에 쥐면 서늘하게 반짝인다. 감각은 시각에서 촉각으로, 다시 마음으로 이어진다. 빛과 색, 질감에 집중해 완성한 오브제는 조용히 삶의 풍경 속에 머문다.

크렘을 이끄는 김예린 대표의 기준은 분명하다. 밀도와 일관성. 작은 선택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눈길을 끄는 것과 마음에 남는 것은 다르며, 그녀는 늘 후자를 택한다. 그래서 하나의 제품을 기획할 때도, 그것을 처음 열어본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할지, 어떤 하루에 이 비누를 쓰게 될지 먼저 상상한다. 작은 위로에서 시작한 크렘은 테이블웨어와 프리미엄 오브제로 감각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브랜드는 그렇게, 어느 한 사람의 평범한 하루에 조용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존재감을 만들어간다.

김예린 대표는 감각과 진심을 밀도 있게 쌓아올려, 일상에 조용히 스며드는 깊은 여운을 지닌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사진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의 예술적 경험이 지금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10대 시절에는 재즈 음악을 공부했고,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사진과로 다시 진학해 순수예술을 전공했다.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면서, 표현의 본질은 결국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은 브랜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진 작업을 할 때처럼, 하나의 비누를 만들 때도 빛, 색, 질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비누는 단순한 세정 제품이 아니라,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을 전하는 오브제라 생각한다. 나에게 비누는 또 다른 방식의 예술이다. 그 안에는 계절과 감정,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감각적으로 교감하고, 일상 속 조용한 위로와 영감을 전하고자 한다.

비누라는 아이템으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 선택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이 있다면 함께 듣고 싶다.

처음부터 비누를 창업 아이템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욕실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비누를 만지고, 씻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든 비누를 친구에게 보여주었고, 친구는 “이건 그냥 비누가 아니라 작품이야”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깊이 다가왔다.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감정적으로 닿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감각과 위로가 함께 담긴 작은 오브제를 고민하게 되었고, 크렘은 그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비누는 개인적 경험을 담는 제품이다.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

향, 질감, 색감.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비누는 피부에 직접 닿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일상 속 작은 오브제라고 생각한다. 향은 향수처럼 강하지 않고 흔한 비누 향과도 다르다. 샤워 후 몸에 은은하게 남는 잔향을 중시한다. 가까운 거리에서만 살짝 느껴지는 미묘한 향이 기억과 감정을 자극한다. 질감은 손안에서 부드럽게 굴러가는 느낌과 조밀하게 올라오는 거품을 중요하게 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위로가 있어야 하고, 색감은 마른 상태보다 물에 닿았을 때 더 아름다워야 한다. 욕실 안에서 하루의 기분을 바꾸는 작은 장면이 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요소 위에는 반드시 안전한 성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감각적이기만 하고 피부에 자극이 된다면 우리 브랜드 철학과 맞지 않는다. 향과 색, 촉감이 감정적으로는 위로가 되고, 피부에는 순하게 닿는 비누.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크렘의 씨글라스 비누.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 피부에 순하게 닿는 성분, 빛과 감정을 담은 섬세한 색감이 크렘 비누의 강점이다. [사진=크렘]

비누의 성분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제품의 감각이나 철학과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피부에 안전한가 하는 점이다. 비누는 매일 피부에 닿는 만큼, 이 기준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 자극적인 성분은 사용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요소는 최대한 덜어낸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예쁘고 독특한 성분을 선택할 수 있다. 색을 구성하는 안료나 향을 만드는 오일 하나에도 크렘만의 감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성분이든 피부에 직접 닿았을 때 안전한가 하는 기준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자극이 남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의미가 없다. 우리는 안전함을 바탕으로 감성을 전하고자 한다. 예쁘고 독특하되, 본질적으로 정직한 것. 그것이 성분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피드백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듣고 싶다. 크렘이라는 브랜드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한 고객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요즘 많이 지쳐 있었는데, 비누를 받자마자 향만 맡아도 울컥했다고 했다. 욕실에서 조용히 비누를 문지르며 혼자 위로받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며칠 동안 마음에 깊이 남았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냥 깨끗이 씻는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에 조용히 스며들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제품을 만들 때마다, 이 비누를 받는 사람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 피드백은 내가 걸어온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말이었다.

현재 새롭게 준비 중인 프로젝트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듣고 싶다. 크렘이 다음으로 그리고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비누에만 머무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상의 감도를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했고, 그 연장선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Crème Home(크렘홈)’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심은 테이블웨어다. 기존에 쌓아온 색채와 형태의 조합을 그대로 옮겨온 결과물이며, 욕실을 넘어 식탁 위와 집 안 곳곳에서 쓰일 수 있는 물건으로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를 통해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는 본업 외에 노르웨이 커피 브랜드 ‘Fuglen(푸글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그동안 YG엔터테인먼트, 킨포크, 미니쿠퍼, 투썸플레이스 등과 함께 굿즈 및 브랜디드 오브제를 기획해 왔고,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독립 프로젝트들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단순히 예쁜 제품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감정이 머무는 공간과 경험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크렘은 팔레트 테이블웨어를 비롯해 감성을 지닌 오브제로 일상의 풍경을 세심하게 완성해간다. [사진=크렘]


해외 시장에 대한 계획이나 관심도 궁금하다. 크렘이 지닌 고유한 감각이 해외 소비자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하는 지도 듣고 싶다.

꾸준히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품을 수출한 국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중국이며, 특히 미국의 Nordstrom(노드스트롬), 멕시코의 El Palacio de Hierro(엘 팔라시오 데 이에로) 같은 프리미엄 백화점에 입점해 유통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대만과 베트남 시장과의 협의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만의 감성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언어는 달라도 감정은 통한다고 믿는다.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준비를 하고 있다.

크렘은 미적인 완성도가 높은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블랙핑크와 아이콘 등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인상적인데,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

단순 유명 아티스트의 이름을 빌리는 방식의 협업에는 흥미가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협업은 서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결과물에 유기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블랙핑크와 아이콘과의 협업이었다. 로고를 단순히 넣는 수준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우리가 가진 감성을 연결해 디자인부터 향 구성까지 함께 기획했다. 그 결과물은 굿즈라기보다는 하나의 완성도 높은 브랜드 오브제에 가까웠다. 팬들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로부터도 ‘이건 단순한 아티스트 굿즈가 아니다’라는 반응을 들었고, 그 피드백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협업의 핵심은 서로의 결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 조화를 기준으로, 감각이 맞는 아티스트와 브랜드들과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생각이나 원칙은 무엇인가.

브랜드를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밀도와 일관성이다.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왜 이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다. 제품의 향, 색, 질감부터 사진, 말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감각 안에서 통일된 톤을 유지할 때 비로소 브랜드는 생명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리듬과 타이밍이다. 브랜드는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 멈추고, 언제 보여주며, 언제 비워야 할지를 아는 것이 운영의 본질적 힘이라고 본다. 이러한 판단은 언제나 직감에 따른다. 고유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각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감각과 감성을 브랜드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하고, 밀도 있게 쌓아 올리는 일은 분명한 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크렘이 지향하는 것은 예쁘기만 한 브랜드가 아니다. 단단한 과정과 뚜렷한 감성으로 존중받는 브랜드, 그게 바라는 목표다.

앞으로 누군가 크렘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릴 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

단지 예쁘기만 한 브랜드로 남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이 크렘을 떠올릴 때, 비누나 테이블웨어를 넘어서 감정이 머무는 순간까지 함께 기억되길 바란다. 향이나 색감, 물에 닿았을 때의 질감처럼 작은 감각들이 하루의 기분을 바꾸고, 일상에 여운을 남기는 경험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제품보다 감각을 만들고, 트렌드보다 무드를 제안하는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려 한다. 가볍게 지나가는 이름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브랜드. 그것이 내가 그리는 모습이다.

크렘의 비누는 은은한 향과 깊은 색감으로 일상에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사진=크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