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전자 하충현 대표 인터뷰 - 36년간 국산 미용기기의 자존심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기업

윤택환 기자 승인 2024.06.24 10:59 | 최종 수정 2024.06.24 13:08 의견 0

하성전자 하충현대표 -윤택환기자 제공

미용기계 국산화의 선구자, 하성전자 하충현 대표를 만나보았다. 하 대표는 일본을 비롯한 외국 제품들이 지배하던 국내 미용기기 시장에 뛰어들어 국산 제품의 자존심을 지켜온 업계의 산증인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국산화의 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그의 이야기 속엔, 지난 36년간의 도전과 고뇌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국산제품이 없던 미용기기 시장에 도전하다

하 대표는 하성전자의 창업 배경을 설명하며, 젊은 시절 미용용품 수입업체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 달에 300대 팔리던 전기바리깡이 갑자기 10배 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가 남대문시장에서 하나 구입해 써보니 너무 편리해 놀랐습니다. 앞으로는 전기바리깡의 시대가 온다는 확신이 들었죠." 당시 시장의 95% 이상을 일본 제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제품을 수입해서 팔면 훨씬 편했겠지만, 하 대표는 국산이 없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까짓 것을 못 만들겠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하성전자까지 오게 됐습니다."

하성전자의 대표 브랜드와 제품에 대해 묻자, 하 대표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E-SIS와 IONIS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발기의 핵심인 이온 주입 기술과 드라이기 바람에 생성되는 음이온 기술로 많은 고객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Glatt라는 브랜드로 남성용 면도기와 면도로션 등을 새로 런칭 했으며, 바버샵 등의 고객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제조업환경 갈수록 너무나 어려워져

하성전자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하이서울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이서울 기업은 서울에 소재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소기업을 인증하고 지원하는 제도로, 지난 36년간 국산 미용기기의 자존심이었던 하성전자를 아직도 더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가진 기업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기에 대해 하 대표는 어려움을 토로 했다.

"제조업 환경이 너무나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쇼핑이 생긴 뒤, 그동안 도매에서 소매로 이어지던 유통시장이 붕괴됐어요. 업계 모두가 어려워져서 원부자재를 납품하던 협력업체들이 자꾸 없어지는 것도 무척 힘듭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도 부담이 됩니다."

구직자들의 제조업 기피현상도 큰 고민거리다. 하 대표는 "매출은 떨어지는데 급여는 자꾸 올라갑니다. 인건비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제조업에 취업하려는 사람 자체가 없습니다. 작년에는 사람이 없어 내가 직접 작업을 하다 손을 크게 다친 적도 있었어요. 사람을 못 구하니 좋은 주문이 있어도 그걸 맡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직원들도 근로 문화가 바뀌어 주 52시간 외 작업을 기피해요. 컨테이너가 도착해 기다리고 있어도 퇴근시간이 되면 그냥 퇴근해버립니다. 포장박스를 접을 아르바이트조차 구할 수 없어 가족들까지 동원해 새벽 3시까지 포장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 싶습니다." 라며 호소했다. 그는 이어서 "일이 들어오는 게 두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비싼 금액을 투자한 기계 설비들을 운용할 기술자들을 못 구하는 게 가장 힘듭니다. 사람 구하려 해도 사람을 구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과연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라고 아쉬워하며 덧붙였다.

한때는 상장을 추진할 정도로 잘 되기도, 그러나...

하성전자 제품들- 하성전자 제공

사업 초창기에 대해 묻자 그는 담담하게 그 시절을 회상했다. "예전엔 수출도 많이 하고, 상장을 추진할 정도로 잘 됐습니다. 95년부터 2004년까지는 국방부에 전기바리깡을 독점 납품했어요. 당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작과정과 사용테스트까지 엄격한 실사를 거쳐 선발됐죠."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납 일반 물자를 조달청에서 맡게 되면서 2005년도부터 최저가라는 이유로 중국산 저품질 제품들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중국산 저가 제품들의 공세로 인한 피해는 상당했다. "현재 약 43개 업체가 중국산을 가져와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속여서 팔고 있습니다. 그런 업체들을 고발해도 시정은커녕 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정정당당하게 국내에서 제조하는 업체들만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불량업체들은 질 낮은 중국산을 국산 제품이라고 속여 팔아요. 사용자들이 국산 제품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하 대표는 한 사건을 떠올렸다. "한번은 우리가 많이 수출하던 제품이 있었습니다. 직원 중 하나가 몰래 외국 바이어들한테 그 모델들과 똑같이 생긴 중국산을 우리 제품보다 반값 이하로 공급했어요. 그러면서 우리 제품 이미지를 다 망쳐놔 수출 거래가 싹 끊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분개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직도 억울함이 느껴졌다.

뒤이어 그는 우리나라 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우리나라 산업은 완전히 뿌리가 내려지지 않은 조건에서 급격하게 발전했어요. 뿌리가 확실하게 안 내려진 상황에서 또 이렇게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다 보니 다음 세대로 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IT나 AI 산업 쪽으로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한 나라가 된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시대에 안 맞는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조업의 역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제조업의 산증인으로서, 그의 말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뛰어난 성능의 신제품들과 애견미용제품들로 세계시장 공략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역점사업과 새로 출시할 제품들에 대해 묻자 하 대표는,

"다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한 헤어 컬링 아이론 신제품을 일본 전역의 돈키호테 매장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 외 신제품 이발기와 업소용 파마기 등을 계획에 맞춰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어요. 또한, 미국산과 독일산이 지배하는 애견 이발기를 국산화해 크기는 더 작고 파워는 더욱 강해진 신제품을 출시 준비 중입니다. 애견용 전동테이블은 올해 안으로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호주 바이어와의 MOU와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주문한 신제품들도 올해 안으로 개발을 끝낼 예정입니다. 항상 고객의 니즈에 귀 기울여 신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하고 있습니다." 라며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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