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처치키트는 상처나 찰과상, 화상처럼 갑자기 생기는 부상에 바로 쓸 수 있는 필수품이다.
일진약품 조현우 대표는 이런 키트가 사람과 생활이 있는 모든 공간에 꼭 있어야 하며, 낯설지 않게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생각에서 새로운 응급처치키트가 만들어졌다.
기존의 빨간색과 흰색 대신 파스텔톤으로 색을 바꾸고, 제품 트렌드에 맞춰 구성품도 계속 새로 채워가고 있다. 일진약품은 인식개선을 위한 ‘1가구 1구급함’ 운동을 펼치고, 응급처치 요령과 키트 사용법을 쉽고 재밌게 전하기 위한 숏폼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이 덕분에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조금 더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조현우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일진약품 조현우 대표와 올해 출시 예정인 9가지 신제품. 조현우 대표는 미국의 IT 기업에서 11년간 근무한 후 6년 전 귀국해 일진약품을 총괄하고 있다. 신제품들은 색상, 모양, 가격 등 내부 앙케트를 거쳐 선별됐으며, 이같이 일진약품의 모든 제품에는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된다. [사진=일진약품]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일본과 미국의 IT 기업에서 11년간 근무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지 6년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구급함 사출성형기를 직접 들여와 생산라인을 관리했고, 3년 전부터 일진약품의 경영을 맡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진약품의 이야기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아버지이자 창업자인 조길수 회장이 제일의료기상사를 세우며 의료용품과 의약품 유통을 시작했다. 1998년에 상호를 ‘일진약품’으로 바꾸고, 구급함 생산을 시작했다. 나는 가업을 이어받아 국내 선도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운영하는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우리는 약 30년 전부터 구급함 생산과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구급함과 구급가방을 포함해 40여 종의 응급처치키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의약외품과 의료기기 OEM 생산도 병행하고 있다.
일진약품의 사출라인. 일진약품은 사출성형기를 통해 구급함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직접 생산한다. 따라서 개발 속도는 물론, 제품의 품질 또한 한층 높일 수 있다. [사진=일진약품]
주 고객층과 고객관리 방법이 궁금하다.
주 고객층은 일반 소비자, 기업, 학교, 관공서다. 그중에서도 기업과 공공기관이 주요 고객층이며, 현재 등록된 거래처 수는 8,000여 곳에 달하고, 누적 제품 판매 수량은 300만 개를 넘는다. 응급처치키트는 사람이 있는 모든 공간에 필요한 제품인 만큼,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관리는 좋은 제품, 빠른 배송, 철저한 사후관리가 핵심이다. 우리 제품은 국내외 인증을 받은 구성품으로 구성되며, 만약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는 경우 고객 연락 즉시 새 제품으로 교환해 드리고 있다. 배송 중 파손처럼 우리 책임이 아닌 상황도 있다. 그래도 고객으로서는 누구의 잘못인지보다 제품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많은 업체가 제품을 돌려받고 파손 여부를 확인한 뒤 교환을 진행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미 일주일이 지나버린다. 그래서 고객이 교환 요청을 주면 불량 여부만 사진으로 확인한 뒤, 바로 당일 새 제품을 보내드린다. 안전을 다루는 회사일수록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
응급함에 새로운 색상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응급처치키트는 평소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순간에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색상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빨간색은 눈에 잘 띄지만, 아이들에게는 다소 무섭게 느껴질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많은 유치원에서도 친근하게 보이도록 올해 출시 예정인 9가지 신제품에는 세 가지 파스텔톤을 적용했다. 우리는 사출성형기를 보유해 구급함과 다양한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고객의 취향이나 공간 분위기에 맞춰 언제든 새로운 색상을 선보일 수 있다.
국가재난대비 중점관리업체로 선정됐다.
2025년부터는 정부로부터 중점관리업체로 선정되었다. 중점관리업체는 전시나 재난 등 긴급 상황에서 육해공군과 국가보훈부 등 주요 기관에 필요한 응급처치키트를 먼저 공급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업체다.
중점관리업체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유사시에도 일정 수량 이상을 안정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지, 국가에서 정한 자격을 가진 기술자가 있는지, 24시간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모두 검증받아야 한다. 전기나 수도가 끊겼을 때의 대처 방안까지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우리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정부로부터 생산력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므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연구전담부서’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까지는 대표 한 명의 생각으로만 제품화를 진행했다. 하지만 회사 문화를 바꾸면서 구성원들의 아이디어가 좋은 제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연구개발부서를 만들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회용 반창고 제품, 무더위 예방키트의 리뉴얼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신규 의약외품, 일반소비자용 신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제품들은 내부 앙케트 통해 여러 차례 검토와 선별 과정을 거쳐 출시된다. 구급함의 색상과 모양, 포장과 문구, 가격, 마감 등 세부적인 요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구성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다. 구성원들의 경험과 의견을 적용함으로써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제품 개발이 가능하며, 내부 피드백을 통해 문제점을 사전에 발견하고 개선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일진약품의 인허가 및 특허 관련 증명서. 일진약품은 직접 고용한 약사 2명의 관리·감독 아래 제품을 생산한다. 또한 식약처의 KGSP 인증을 획득하고, 국가재난대비 중점관리대상업체로 선정되며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일진약품]
응급처치 인식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2001년에 대한약사회와 함께 ‘1가구 1구급함’ 운동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20년도 넘게 흘렀지만, 응급처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현장에서는 응급처치키트의 필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으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그 중요성이 덜 알려져 있다.
또한 에탄올이나 과산화수소, 소독약처럼 구급함에 들어 있는 의료용품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을 수는 있지만, 잘못된 내용이 적지 않다.
응급처치 요령 및 키트 사용법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응급처치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숏폼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너무 딱딱하게 가르치려 하기보다, B급 감성을 더해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마케팅 효과도 기대되지만, 먼저 정확한 정보를 전해야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는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코로나19 시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시민들과 취약 계층을 위해, 2020년 2월에 남양주시와 양주시 그리고 의정부시에 각 1만 장의 마스크를 기부했다.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 결정이었으나, 국난에 버금가는 코로나19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일이었기에 굉장히 보람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경험 이후, 현재도 일부 지자체에 제품을 꾸준히 기부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 중이다.
경영철학이 궁금하다.
3년 전 구성원분들과 함께 ‘행복한 인재와 함께 세상을 건강하게 하는 기업’이라는 미션을 만들었다. ‘세상을 건강하게’보다 ‘행복한 인재와 함께’가 먼저 나오는 건, 무엇보다 우리 구성원들이 행복하기를 바래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일터인데, 그 시간이 괴롭기만 하다면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집에서의 어려움이 회사에서 풀리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일 수 있다. 다만 회사에서 겪은 괴로움만큼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도록, 즐겁고 건강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직원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휴가 등의 결재를 받을 수 있도록 권한을 각 부서장에게 넘겼다. 사내 근무 의욕 향상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또한 회사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나 각종 행사, 이벤트 등을 전사에 공유하며 구성원들이 함께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항상 마음에 두는 건, 회사는 가족 같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흔히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을 하지만, 회사는 회사다워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기준과 공정한 질서 속에서 구성원들이 진짜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에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나.
정부 기관 입찰에는 가끔 해당 분야와 무관한 업체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전문성이 부족한 납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결국 국민의 안전과도 연결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환경부에 매년 환경부담금을 내고 있다. 구급함을 포장재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급함은 함이 핵심인 제품이다. 구급함을 구매했을 때 안에 있는 약품을 다 꺼내서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약품을 다 사용해도 함은 버리지 않고, 다른 약품을 채워 넣는다.
따라서 구급함은 포장재가 아니라 지속해서 사용하는 제품 본체로 분류되어야 한다. 전문성과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준이 마련되고,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규제는 개선되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구상 중인 방향이 궁금하다.
B2C 시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우선 온라인을 활용하려고 한다. 스마트스토어, 쿠팡, 오픈 몰에 입점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B2B로 운영하다 보니, 벤더와 소통하기 때문에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분과의 접점이 없었다. 따라서 제조사로서 제품 개발을 할 때 도움이 되는 데이터나 자료들이 부족했다.
응급처치키트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구성품의 실효성을 판단할 수 있다. 그래야 사용 빈도가 낮은 제품을 파악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구성으로 키트를 만들 수 있다. 요즘은 붕대 대신, 접착제가 없어도 서로 달라붙어 고정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요즘 잘 안 쓰는데 왜 들어있지?’ 같은 고객의 작은 불만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피드백이다.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고객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더 실용적인 응급처치키트를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