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택 시장에서 한때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던 주방 가전업체 ‘하츠’의 창립자에서, 이제는 많은 예술가들의 든든한 지원자로 변신한 이수문 회장을 만났다. 주방 가전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건강 문제로 회사를 매각한 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남은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이수문 대표.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하츠’의 성공부터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천안 창작촌과 뮤지엄 호두를 설립하며 예술가들을 위한 든든한 뿌리가 되어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국내 대표 주방 가전 하츠 창립자
이수문 대표는 젊은 시절 건축을 전공한 후, 당시 설계사무소가 주 업무였던 한샘에 입사하여 주방 가구의 개발, 생산, 영업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현대그룹의 리바트에서 아파트 붙박이 가구 및 창호 등의 개발과 영업을 맡았으며, 1988년에는 독립하여 주방 가전 회사 '하츠'를 설립해 2002년에 상장사로까지 성장시켰다. 하츠는 설립 초기부터 독일의 기술력, 이탈리아의 디자인, 일본의 철저한 품질 관리 등 세 나라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이 같은 ‘획기적인 차별화’ 전략을 통해 경쟁업체들을 압도했고, 이내 국내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달성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의 몸에 갑자기 멈춰야 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찾아왔다.
"회사를 열심히 운영하던 중 정기 건강 검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겁니다. 다행히 초기 단계였기에 큰 위기는 아니었지만, 의사는 이제 일에서 손을 놓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츠는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건강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회사를 떠나면 그는 새로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남은 자금을 가지고 골프를 치며 여유롭게 살 수도 있었죠. 해외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여생을 즐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런 삶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내가 남은 인생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문화예술로 향하게 된다.
국내 창작 뮤지컬의 대표작 명성황후 제작
예술가들의 든든한 뿌리가 되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문화예술과 밀접한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 시절에는 연극을 하며 무대 위에 섰고, 군대에서는 군악대로 가서 음악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그러나 사업에 몰두하며 그 열정은 잠시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손을 떼고 난 뒤, 그의 오랜 예술적 열망이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항상 예술을 좋아했어요. 연극, 음악, 뮤지컬... 내가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죠. 그래서 국내 창작 뮤지컬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렇게 제작된 것이 '명성황후'였어요."
‘명성황후’는 그의 삶의 두 번째 막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최고 인재들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을 준비한 끝에, 뮤지컬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이수문 대표가 기업 경영에서 거둔 성공과는 또 다른 성취였다.
"명성황후의 성공은 단순히 예술적인 성취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술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죠. 예술과 비즈니스가 서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순간이었어요."
이후 그는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트센터화이트 블럭, 예술지원의 첫걸음
천안 창작촌과 뮤지엄호두 설립으로 이어져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수문 대표는 아내인 화가 차명희씨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예술 지원 사업에 나선 것이다.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은 미술관과 갤러리의 경계를 허물며, 순수 예술을 지원하는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내는 오랫동안 동양화 작가로 활동했어요. 그녀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환경과 지원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화이트 블럭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수문 대표는 예술가들을 위한 더 큰 지원을 목표로, 천안 창작촌과 뮤지엄호두를 설립했다. 그는 단순히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천안 창작촌은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이 안정적으로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16명의 작가가 천안 창작촌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년 동안 작가들에게 독립된 작업 공간을 제공하며, 매년 8명의 새로운 작가들이 추가로 입주한다. 그는 이러한 공간이 작가들에게 단순히 작업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이 2년간 안정적으로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습니다. 천장 높이, 부엌과 생활 시설까지 모두 고려해 설계했죠. 공간이 단순히 작업실일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생활까지 편하게 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이수문 회장의 철학을 반영한 프로젝트로, 그는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국내의 많은 작가들이 작업할 공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대를 졸업한 학생들중 순수미술을 계속하는 사람은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또한, 미대 졸업 10년 후 화가로 남아있는 작가는 5%도 채 되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은 공간과 자금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그래서 나는 그들이 꾸준히 예술을 할 수 있도록 공간과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천안 창작촌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었다. 16명의 작가들이 안정적인 작업 공간에서 작업하며, 그들이 상업적 성공을 이루기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이수문 회장의 목표다. 그는 작가들이 작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나아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잊지 못할 후배 김민기
이수문 대표는 잊지 못할 후배, ‘아침이슬’의 작곡가이자 극단 학전 대표로 활약한 故 김민기 씨와의 인연을 회상했다. 김민기는 그에게 단순한 후배를 넘어,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준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예술과 인생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다. 김민기는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며 상업성을 배제한 삶을 살았고, 그 점에서 이수문 회장과는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이수문 대표는 그의 깨끗하고 욕심 없는 삶을 존경하며 교류를 이어갔다.
“민기는 저보다 3년 후배였어요. 순수한 예술을 사랑했고, 상업성은 전혀 배제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했고, 절대 앞에 나서지 않았어요.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걷던 친구였죠.”
먼저 떠나버린 후배와의 일들을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가 문득 떨리는 듯했다. 그는 김민기가 남긴 순수하고 단단한 발자취가 여전히 자신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고 했다.
"민기는 참 깔끔한 사람이었어요. 욕심이 없었고, 남에게 좋은 일만 하려고 했죠. 그런 모습이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제가 존경했던 인물입니다.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저와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의 삶은 예술가로서 본받을 만한 모범이었어요."
이수문 대표는 김민기와 나눈 많은 대화를 떠올리며, 그가 추구했던 순수 예술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뮤지엄 호두, 천안의 핫플레이스로 만들 것
이수문 대표는 이제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을 넘어서, 뮤지엄호두가 자립 경영 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뮤지엄호두가 단순히 전시 공간이 아닌, 예술가들의 창작과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천안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기를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이수문 대표는 “연간 10만 명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밝혔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들의 창작물이 예술계와 대중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뮤지엄 호두의 입장료 수익과 부대시설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 계획을 세우며, 뮤지엄호두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 하츠를 성공으로 이끈 경험처럼, 예술 분야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과를 이룰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만들고 싶어
이수문 대표는 자신이 진정으로 예술가들의 '든든한 뿌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한 후원이 아닌, 그들이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천안 창작촌의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이러한 그의 철학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이곳에서 작업 중인 많은 예술가들은 안정된 환경에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그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들이 마음껏 꿈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수문 회장이 삶은 성공한 기업가에서 이제는 예술가들의 꿈을 지켜주는 든든한 후원자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예술가들의 미래에 투자하며, 그들이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삶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존중하는 그의 진심 어린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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