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게 놓인 다과, 천천히 따라지는 차, 계절을 담은 그릇 하나하나. ‘1994SEOUL’은 한국의 전통 디저트를 페어링한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연남동 골목 안쪽에 자리한 이곳은 다과와 절기마다 바뀌는 다과 코스를 통해 전통의 맛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기물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전해지는 경험은 일상에 깊이를 더한다.

한국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오래전부터 삶의 일부였다. 차는 마음을 다스리고 계절을 느끼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조용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그 곁을 채우는 다과는 삶 속 작은 쉼이자 교감의 시간이었다.

이명재 대표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쌓여 만들어지는 전통 다과의 매력을 발견하며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섰다. ‘시간이 담긴 음식’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지금은 차와 다과를 통해 계절의 모습과 한국 고유의 멋을 담아내고 있다.

이명재 대표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감성을 잇는 방식으로 다과와 차 문화를 전파하고자 '1994SEOUL'을 운영하며, 오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1994SEOUL’이라는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운영하게 되기까지, 어떤 생각과 경험이 바탕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처음 이 일을 결심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오늘날의 감성을 잇는 방식으로, 한국의 병과와 차 문화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시절, 부모님이 인천에서 운영하시던 떡집을 졸업작품의 주제로 삼아 로고와 패키지를 직접 디자인했고, 그 과정을 통해 떡이라는 음식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특히 ‘시간이 담긴 음식’이라는 개념에 매력을 느끼면서 이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지금도 떡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일부를 돕는 정도였지만,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후 부모님의 권유로 전통 떡을 체계적으로 배우기로 결심했고, 약 6년간 전통 음식 선생님의 문하에서 떡과 한과를 포함한 전통 식문화를 익혔다.

이 일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많은 사람이 떡을 흔히 시장 떡 정도로 인식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공부를 거듭할수록 떡은 과거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즐기던 귀한 음식이었고, 유서 깊은 전통 다과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와 함께 전통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하생 시절에는 어떤 것을 배우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떡과 한과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통 한식 전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떡과 다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한국 전통 식문화에 대한 이해도 넓어졌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기업 총수나 국가 행사 등 중요한 자리의 음식을 준비하셨는데, 그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떡과 다과가 매우 품격 있는 음식이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프리미엄 병과점을 구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매장을 연남동에 낸 이유와 1층부터 3층까지의 공간 구성을 어떻게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활기찬 거리의 중심에서 골목 하나만 들어서면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이 지역만의 이중적인 매력에 있었다. 매장은 번화한 거리에서 한 걸음 물러난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도심 속에서도 고요한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1994서울은 연남동의 골목에 자리잡아, 도심 속에서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에메랄드와 레드 컬러로 구성된 패키지와 로고가 특히 눈에 띈다.

로고는 절기마다 바뀌는 다과 코스의 특성을 담기 위해, 변화하는 달의 모양을 형상화해 디자인했다. 절기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패키지 역시 전통 병과의 익숙한 이미지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초콜릿 상자처럼 현대적인 느낌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겉보기에는 모던하지만, 열어보았을 때 전통 음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와 반전을 줄 수 있도록 기획했다.

패키지는 전통 병과의 익숙한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으로 재구성해, 열어보는 순간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을 제공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강렬한 레드가 돋보이는 다과 패키지. 전통의 가치를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예술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전달한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1994서울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브랜드의 주요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프리미엄 떡과 다과를 중심으로 한 선물 세트를 기획하고 제작해 판매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절기를 주제로 한 예약제 차 코스를 운영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VIP 라운지에 약과를 제공하거나, 명절 시즌에 맞춰 VIP 고객을 위한 맞춤형 선물 세트를 제작해 납품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협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절기마다 변화하는 다과와 차 코스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전통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고객에게 특별한 차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앞으로 새롭게 선보일 예정인 메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올해는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고, 한국 도예 작가들과 협업하여 디저트 그릇을 소개하는 소규모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다과를 제공하고, 담아내는 방식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복합 문화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두 달마다 주제를 바꾸며, 다과와 차, 공간 전체의 분위기까지 함께 변화하는 입체적인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다가오는 여름을 주제로 한 다과 코스도 곧 선보인다.

다과는 한국의 전통 떡과 한과를 기반으로, 계절에 맞춘 예약제 코스 형태로 제공되며, 전통의 맛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고객은 어떤 분들이 주로 방문하시며, 가장 만족해하는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통을 직접 경험해 보고자 하는 분들이 꾸준히 찾아주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고객들의 비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 분들에게 전통은 어렵고 낯선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것임을 전하고자 한다. 한국의 차 예절은 엄격한 형식보다는 여유로운 태도에 가까운 문화이다. 차를 편안하게 마시고, 품격 있는 전통 다과를 함께 즐기는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또한 잊혀가는 절기 문화를 통해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모습까지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지향하고 있다.

그릇이나 차기는 직접 고르는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는지도 궁금하다.

모든 그릇과 기물은 직접 고른다. 기물이 공간의 스타일과 맞지 않을 경우는 작가에게 제작을 요청하기도 한다. 무엇을 담을지 먼저 고려한 후, 그에 적합한 그릇을 선택하며, 계절에 따라 재료와 그릇도 함께 바꾸고 있다. 여름에는 유리나 대나무처럼 시원한 질감을 가진 소재를, 겨울에는 백자나 분청사기처럼 온기를 머금은 기물을 주로 사용한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가지고 있는 철칙이 있다면.

작은 것에도 마음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물 세트를 만들 때도 받는 이가 그것을 열었을 때 어떤 기분일지를 먼저 생각하며 구성한다. 다실의 구성도 마찬가지이다. 손님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항상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고객 한 분, 떡 한 점, 차 한 잔에 담긴 마음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그 정성이 모여 브랜드의 깊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전통 한국의 미감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전통의 미와 품격을 전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돋보인다. [사진=기업경영인신문]

공간 곳곳에서 한국적 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조형 감각이나 미(美)에 대해 어떻게 공부하나. 공간에 달항아리를 둔 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궁금하다.

전통적인 미감은 책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므로, 평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자주 찾고 전시회를 관람하며 직접 보고 느끼며 공부하고 있다. 공간에 배치한 달항아리는 형태의 아름다움이나 여백의 미 때문만은 아니다. 항아리 자체가 복을 상징하는 기물인 만큼, 이 공간을 찾는 분들께 좋은 기운과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선택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도 절기의 다과 코스를 경험해 보셨나.

처음으로 다과 코스를 대접한 분은 부모님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보여드리려는 마음이었지만, 이후에 방문한 손님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나 역시 부모님께 제대로 한 상을 차려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다시 정성을 들여 준비해 대접했다. 그 자리에서 부모님은 기쁘게 다과를 즐기셨고, 그 모습을 보며 이 공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되었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받았던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떡이나 다과를 선물 받은 분이 너무 감동해 다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찾아오신 경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너무 만족스러워 부모님을 직접 모시고 방문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위로와 동력을 얻게 된다. 이러한 순간들이야말로 브랜드를 지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가장 큰 영감은 아버지로부터 받는다.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떡이라는 음식에 익숙해졌지만, 당시에는 이른 새벽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고, 재료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직접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성실하게, 그리고 이유 있는 방식으로 일해 오셨는지를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그 성실함이 얼마나 귀한 가치였는지 깊이 느끼고 있으며, 그 모습을 닮기 위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브랜드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한국 전통 떡과 다과가 오늘날에도 세련되고 품격 있는 음식임을 전하고자 한다. 전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도록 절기마다 구성한 다과 코스와 차 페어링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티 코스 외에도 계절의 재료와 지역의 맛을 반영한 프리미엄 선물 세트, 다양한 형태의 다과 패키지를 통해 전통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한국 고유의 다과 문화를 편안하게 접하고,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경험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