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산균을 함유한 화장품 브랜드 ‘쎄담(SSEDAM)으로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화장품 기업, 퀸즈코스메틱의 한철종 대표를 만났다. 10년 동안 국내외 35개 브랜드와 7,000개에 가까운 품목을 국내 에스테틱 전문가화장품 유통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 해온 이들은, 지난 2022년 유산균을 함유한 오리지널 화장품 브랜드 ‘쎄담(SSEDAM)’을 론칭하며 종합화장품 브랜드로서의 야심 찬 첫발을 내디뎠다. 스스로를 ‘퀸즈코스메틱의 대표사원’이라 칭하며 솔선수범의 행동형 리더쉽으로 퀸즈코스메틱을 이끌고 있는 한철종 대표. 그는 이른 새벽 차가운 바다로 나가 가업을 도와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지하 셋방에서의 눈물겨운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의 퀸즈코스메틱을 일군 이야기까지, 가슴 뭉클한 삶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들려주었다.
충남 홍성 굴 양식장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업 도와
자식들 위해 매일 고된 일터로 향하시던 아버지 보며 책임감 배워
한철종 대표는 충남 홍성의 바닷가에서 굴과 김을 채취하는 양식장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넉살 좋고 부모님을 잘 따르는 아이였던 그는 일찍부터 가업을 도우며 자랐다.
"아버지는 도시살이의 꿈과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셨습니다. 그 한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하지 않고, 넓은 꿈을 펼칠 기회가 많은 도시에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당신의 자녀 교육에 특별한 열정을 쏟는 분이셨지요."
새벽마다 자신들을 위해 고된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의 우직한 뒷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는 삶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배웠다. 하지만 때로 어느 추운 겨울이면, 새벽 5시부터 차가운 바닷가에 나와 고된 양식장 일을 돕는 자신과, 밖에서 썰매를 타며 즐겁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그는 가끔씩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게 과연 내 삶의 전부인가’ 라는 고민을 하곤 했다.
고교 시절 자동차라는 꿈 쫓아 가출, 처음으로 느낀 작은 자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고향의 한 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진학하며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한 대표에게, 어느 날 자동차라는 꿈이 생겼다. 언젠가는 도시로 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도 자라났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방학이면 추운 바다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도와야 했던 고향의 일상적인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와 도시에 있는 카센터에 취직하고야 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게 적은 월급이었지만, 자동차를 만지고 고치는 일은 그에게 작은 자유를 선사했다. 그렇게 그는 그곳에서 먹고 자며 조금씩 꿈을 키워나갔다. 부모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며 살아온 그에게 비로소 자신만의 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고된 육체노동... 결국 19살에 찾아온 허리 부상
자동차에 대한 진지한 열망 깨닫고 대학으로
카센터에서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한 대표는, 불안정한 수입으로 인해 잠시 그 꿈을 접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취업을 선택하게 된다. 해태제과 공장의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안타깝게도 얼마 안 가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온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고된 육체노동이 결국 그의 허리를 망가뜨리고야 만 것이다. 겨우 19살의 나이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된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좋아하는 자동차 기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결심한다.
콘크리트 레미콘 영업으로 사회에 첫발, 신도시 건설 현장 돌며 영업의 기본 익혀
이후 자동차 금융상품 판매 도전, 처음으로 작은 성공 맛봐
대학 생활은 즐거웠다. 학생들끼리 직접 자동차를 만들어 경주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등,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자동차에 푹 빠져 살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자, 취업이라는 냉정한 현실의 문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대표는 전공을 살려 자동차 관련 회사에 입사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연이어 입사에 실패하며 꿈과는 다른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그는 전공과 무관하게 유진기업 콘크리트 사업부 건설자재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는 부평, 부천, 일산 등 먼지 자욱한 신도시 개발 현장을 발로 뛰며 영업의 기본을 온몸으로 익혔다. 그렇게 한 대표의 20대 초반은, 사회 초년생이자 신혼 가정을 꾸린 가장으로서, 잦은 술자리 속에 신규 계약을 따내기 위한 고된 일정과 골치 아픈 미수채권 문제와 싸우며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한 사람의 어엿한 세일즈맨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후 그는 레미콘 영업을 떠나 현대캐피탈로 이직해 자동차 리스와 렌트 관련 금융상품 영업에 도전한다. 그곳에서 레미콘 영업부터 다져진 탁월한 영업 능력을 발휘한 한 대표는, 서른이 되기도 전에 1억 원이라는 꿈의 연봉을 달성하고야 만다. 이는 당시 동년배들의 평균 연봉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그에게 인센티브 제도의 진가를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성공의 달콤함도 잠시, 계속 잘될 것만 같던 자동차 금융 영업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경쟁업체가 늘어나며 눈에 띄게 하향세를 탔고, 그의 소득도 함께 급감한다. 당시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한 대표의 고민은 커져만 갔다.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중, 한철종 대표의 머릿속에 문득 막내 삼촌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한 번 제대로 바닥을 쳐보는 것도 나중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그 조언을 되새기며 그는, 오랜 고민 끝에 결국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한 번 올라간 생활 수준을 다시 낮추기 위해서는 큰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길로 당시 G편의점 본사 직원이던 막내 삼촌을 찾아가 상담한 후, 작은 편의점을 시작한다. 당시 그가 가진 자본으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편의점 운영하며 가족과 지하 셋방에서 지낸 2년,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월수입은 175만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수입이 높았던 시절 늘어난 씀씀이는 한 대표와 가족들의 생활을 더욱 고달프게 했다.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5만원의 반지하방의 생활로 어려워진 현실에 적응하기까지 2년이나 시간이 걸렸다.
한없이 고되고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한철종 대표는 오히려 그 시기를 자신을 단련한 값진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고된 시간 동안 그의 곁에서 벗이 되어주며 끝까지 응원해준 유일한 한 사람, 바로 그의 아내 덕분이다. “우린 젊으니까 할 수 있다”며 항상 긍정적인 말로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아내 덕분에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제 인생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며 지하 월셋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일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한 대표에게 이 시기는 인내와 책임감을 다시 한번 깊이 배우고, 삶에서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있어 값진 배움의 기회가 되어, 지금의 퀸즈코스메틱을 창립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화장품 업계로의 도전, 아로마 100병 들고 다니며 수없이 문전박대 겪어...
닫히는 문 막으려 오른발 먼저 내미는 습관 들여
한철종 대표가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한참 젊은 나이에 편의점을 운영하며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에게, 대학 시절의 동기가 지방에서 화장품 유통회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승승장구하는 그 친구를 보며 에스테틱 시장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한 대표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과감하게 화장품 유통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처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아로마 제품 100개를 구입해서 종이가방에 담아, 매일 서른 곳 이상 에스테틱 숍을 방문하며 수많은 문전박대를 겪었다. 금남의 영역인 에스테틱 업계에서 남성으로서 영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매정하게 그를 쫓아내며 문을 닫으려는 원장들에게 “10초만 시간을 달라”며 매달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얘기도 안 들어보고 문을 닫으시려는 분들이 많아 오른발을 먼저 들이밀고 문을 막는 버릇이 생겼다"는 그의 말은, 당시 그가 얼마나 간절하고 필사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한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부끄럽고 자존심 상한 적도 많았지만, 아이들을 떠올리면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라며 웃음 지었다.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었던 힘든 시기에 셋째가 태어났고,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수십 곳의 숍을 방문하며 거래처를 확보해 나갔다. 그의 노력은 점차 결실을 맺기 시작했고, 첫 달 200만 원이었던 매출은 다음 달 2배로 올라 400만 원이 되었다. 그리고 화장품 영업을 시작한지 석 달째, 통장에 찍힌 매출액 2,000만 원을 본 한 대표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퀸즈코스메틱 설립, 하루 수 십곳의 숍 찾아다니던 10년의 발걸음부터 시작돼
고객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는 것, 느리지만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길
한철종 대표는 자신이 화장품 영업에서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장에서 직접 고객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품만 팔려는 게 아니라, 그 숍이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교육, 마케팅까지 지원하며 슈퍼바이저 역할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절실했고, 인내하며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 지금의 퀸즈코스메틱이 되었습니다."
퀸즈코스메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로마 제품 100개를 들고 하루 수십 곳의 에스테틱 숍을 일일이 찾아다니던 그의 발걸음으로 시작해, 지금은 국내외 35개 브랜드, 7,000여 개의 품목을 유통하는 탄탄한 화장품 유통기업이 된 것이다.
지금도 한 대표는 스스로 퀸즈코스메틱의 ‘대표사원’이라 칭하며 이러한 현장 영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온라인 마케팅이나 SNS 영업을 중시하지만, 한 대표는 여전히 고객을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며 소통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비록 이 방식이 느리고, 때로는 유통의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는 이 방식이야말로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다. 느리지만, 고객과 진정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연습생이던 큰딸의 맑은 모습에서 탄생한 첫 오리지널 브랜드, ‘쎄담(SSEDAM)’
전 세계 12개국 진출, 차세대 K-화장품의 대표주자 노린다
가족을 향한 한철종 대표의 특별한 사랑은 그의 사업에도 중요한 영감을 가져다줬다.
그는 퀸즈코스메틱의 첫 오리지널 에스테틱 & 스파 전문가 브랜드 ‘쎄담’의 탄생 비화를 들려주었다.
"아이돌을 꿈꾸는 큰딸을 응원하고자, 부모이기에 3년 동안 밤마다 강남까지 픽업을 다녔습니다. 딸이 17살 무렵이던 어느 날, 연습생 생활로 고생하면서도 언제나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을 유지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그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화장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이돌 연습생이던 큰딸의 맑은 모습에서 쎄담의 출발점을 찾았다.
특히, 배우로도 활동하던 큰딸이 드라마 촬영 당시 항상 입고 다니던 핑크색 가디건을 기억하며, 그 핑크색이야말로 쎄담이 추구하는 순수한 피부의 시작, 맑음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피부 본연의 건강함과 맑음을 유지해 줄 수 있는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거기에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자가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피부 유산균을 활용해 건강한 피부 장벽으로 개선하는 데 특화된 스킨케어 브랜드, '쎄담'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이처럼 쎄담은, 한철종 대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의 딸에게서 시작된 영감이자, 피부 본연의 깨끗함과 건강함을 지켜주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담긴 결과물이었다.
좋은 제품 만들기 위한 강한 집념, 연구원들이 두 손 들고 포기할 정도
44번의 테스트 끝에 탄생한 쎄담, 2025년까지 30개국 수출 목표
한철종 대표는 처음부터 ‘쎄담’ 제품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강한 집념을 보였다. 제조사 연구원이 "더는 할 수 없다"며 포기할 정도로 끈질기게 밀어붙인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연구원들을 다독이며 제품 개발에 매진했다. 그렇게 총 44번의 테스트를 거쳐 유산균의 효능을 극대화한 앰플이 탄생했다. 이렇게 탄생한 ‘쎄담’은 런칭 1년 만에 베트남과 60억 원 규모의 리얼 락토 블랙라벨 키트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미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12개국으로 수출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2024년 현재 쎄담은 총 25종의 제품군을 보유하며, 국내 4,700곳의 에스테틱 샵에 입점하여 성공적인 브랜드로 정착했다. 한 대표는 2025년까지 쎄담을 30개국에 진출시키고, 45종의 제품군으로 확장하여 글로벌 K-뷰티 에스테틱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성공의 동반자, 가족
한철종 대표에게 가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가족은 그의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중심이었다. 회사 설립 때부터 함께해준 아내는 현재까지 퀸즈코스메틱의 교육이사로 활동하며, 일과 육아를 묵묵히 도맡아왔다. 한 대표는 여러 차례 아내의 헌신이 지금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대표사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직원들과 함께 도전하고 성장하는 모습 역시, 가족을 위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특히 한 대표는 자녀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냈다. 그는 쎄담의 탄생에 큰 영감을 준 큰딸이 아이돌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오히려 큰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매일 밤 11시에 딸을 데리러 가서 새벽 1시에 함께 집에 돌아오는 3년 동안, 무려 87,000km를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부모의 의무 그 이상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그는 가족과 더욱 깊이 교감할 수 있었고, 딸의 꿈을 응원하며 스스로 더 나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한 대표는 “딸의 성장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 과정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또한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꾸준한 자기관리를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여전히 눈에 띄는 젊음을 유지하며, 퀸즈코스메틱 제품들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는 최고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처럼 자녀들은 그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고 자라,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매일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모는 같은 날 심어도 먼저 고개 숙인 벼가 더 좋은 쌀이 된다. 그러니 항상 나를 낮추고 먼저 인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지금은 아직 어리지만, 언젠가는 이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언젠가는 어린 아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할 것이라며 웃는 그에게서, 자녀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얼마 전 사춘기에 접어든 15살 막내딸에게서 “아빠는 어떻게 매일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요? 나도 아빠처럼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가정에서도 성공한 아버지임을 실감했다. 딸의 그 말은 그 어떤 사업적 성취보다도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한철종 대표에게 가족은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끊임없이 노력의 이유가 되었다. 그가 쌓아온 모든 성취의 밑바탕에는 가족이 있었고, 그 사랑과 책임감이야말로 지금껏 그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내면과 외면 아우르는 진정한 멋쟁이
한철종 대표를 만난 후, 떠올린 생각은 그가 ‘내면과 외면을 아우르는 진정한 멋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고, 가족과 함께한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그 경험을 통해 배운 책임감과 인내로 퀸즈코스메틱을 이끌어온 사람이다. 꾸준한 운동과 자기관리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자신의 몸과 정신을 가꿔왔다. 또한, 자신을 ‘대표사원’이라 낮추며, 여전히 현장에서 직접 고객과 마주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추구하는 성공은 단순한 물질적인 성취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신뢰, 진정한 소통,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 대표는 사업의 모든 과정에서 자신을 낮추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철학은 회사의 성장과 직원들의 존경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있어 '성공'은 단지 수익이 아닌, 삶의 가치를 지키며 모두와 함께 성장해가는 것이다.
퀸즈코스메틱의 대표사원, 진정한 멋쟁이 한철종. 그의 삶은 힘든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며 살아온, 진정한 멋을 지닌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은 더 큰 성공과 성취로 이어질 것이라 믿어진다. 그의 행보를 기대하며 마음 깊이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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