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에프글로벌 박인규 회장. 그는 대한민국 의류 유통의 새로운 역사를 쓴 전설 같은 존재다. 그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새로운 유통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수많은 후배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종합상사에서 근무를 시작으로, 홈쇼핑 산업을 통해 새로운 의류 유통의 길을 개척하며 이어져 온 그의 38년간의 여정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현재도 그는 대한민국 의류산업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여전히 산업의 선두에서 업계를 이끌고 있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박 대표를 만나기 위해, 본지는 한달 넘게 공을 들여 겨우 그와 만날 수 있었다. 어렵게 성사된 이번 인터뷰는, 그의 성공 비결과 의류 유통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의류 유통의 혁신 이끈 살아있는 전설
박인규 회장의 첫 발자국은 종합상사에서 시작된다. 1986년, 그는 섬유를 제조하고 수출하는 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주로 원단을 해외에 수출하는 업무를 맡았던 그는, 섬유 산업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수출과 내수 시장을 오가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다.
1990년대 말, IMF 외환 위기를 맞이하면서 그는 새로운 유통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박 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케이블 TV'였다. 박 회장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케이블 TV 광고의 가능성을 포착했다. 그는 당시 케이블 TV 방송의 광고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의류를 판매하는 홈쇼핑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박 회장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결단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잭필드'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잭필드, 홈쇼핑계를 뒤흔들다
잭필드는 단순한 의류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홈쇼핑이라는 새로운 유통 채널을 통해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격과 품질을 제공한 이 브랜드는, 당시 큰 인기를 끌며 연 매출 2천억 원을 달성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박 회장은 이 성공에 힘입어 당시 전체 직원이 약 900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이 후 그의 비즈니스는 그저 한두 개 브랜드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패션 산업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홈쇼핑 시장 성장과 함께 광고비 급상승, 위기를 사업 다각화의 기회로
하지만 성공만이 그의 이야기를 채우진 않았다. 케이블 TV의 성장과 함께 광고비가 기하급수적으로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 회장은 또 한 번 큰 결단을 내릴 시기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한 달 광고비가 40억 원을 넘게 나갈 때, 더 이상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했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광고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자, 그는 다양한 산업으로의 확장을 모색했다.
그는 상조, 맞춤 양복, 대부업 등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며, 단일한 유통 채널에 의존하지 않는 다각화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시도했다. 당시 상조업, 대부업 등이 케이블 TV 광고를 통해 급성장했던 배경 속에서 박 회장의 뛰어난 안목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이에프 글로벌, 새로운 이름으로 더 큰 도약을 준비하다
골프 의류 ‘데니스 골프’ 한 가족으로, 온라인과 홈쇼핑 유통 확대
이후 박 회장은 기존의 '잭필드 코리아'에서 '제이에프 글로벌'로 회사명을 변경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그는 사업을 다각화하는 와중에도 본업인 의류 사업에서의 경쟁력을 놓치지 않았다. 제이에프 글로벌은 여전히 홈쇼핑을 통해 잭필드 신사바지를 비롯한 다양한 의류 제품을 성공적으로 판매하고 있었으며, 브랜드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가고 있었다.
"우리는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홈쇼핑 등, 온라인,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 채널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갔죠.“
그는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홈쇼핑, SNS 등 비대면 판매에 집중하는 패션 유통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데니스 골프'를 인수하며, 오프라인 매장을 일부 정리하고 온라인과 홈쇼핑을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한층 더 강화했다. 이는 단순한 유통 채널 확장에 그치지 않고, 보다 넓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판매 전략의 일환이었다.
철저한 브랜드 관리 성공의 비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와 협업 모색 중... 고급화 전략으로 경쟁력 강화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자신들의 성공 비결은 단순한 판매 전략을 넘어서, 철저한 브랜드 관리와 품질 보장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각각의 브랜드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잭필드는 10년 이상 홈쇼핑 시장에서 사랑받고 있죠. 이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그곳에서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박 회장은 잭필드를 비롯한 마르조, 브룩스힐 같은 제이에프 글로벌 산하 여러 브랜드들의 특성을 살리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를 통해 제이에프 글로벌의 포트폴리오를 더욱 다양하게 하고자 한다.
“현재 몇몇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홈쇼핑도 이제는 단순한 저가 제품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급화된 제품들을 소개하는 채널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의 이런 행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고급화 전략을 통해 제이에프 글로벌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그는 “같은 제품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두 배, 세 배 차이가 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잭필드의 성공을 넘어 앞으로는 더 많은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고급화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라며 제이에프 글로벌의 변화를 기대하게 했다.
홈쇼핑, 대성공의 희열과 대실패의 좌절이 교차하는 곳
홈쇼핑은 박인규 회장에게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준 전쟁터였다. 수많은 제품을 기획하고, 수십억 원의 매출을 기대하며 방송을 준비하지만, 언제나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다. 박 회장은 이러한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홈쇼핑 방송에서 한 시간 만에 수십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재고만 끌어 안고 큰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며 자신이 겪은 극과 극의 사례를 들려줬다.
”우리가 가장 성공했던 방송은 여성용 브라우스 4종 세트였습니다. 예상했던 매출은 3억 원이었는데, 무려 1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예상보다 400%가 넘게 팔린거죠."
400%의 매출을 기록한 그날, 그는 대성공의 환희를 만끽했다. 그날을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엔 아직도 당시의 흥분이 서려 있는 듯했다.
“가장 큰 실패를 경험했던 방송은 원피스 3종 세트였습니다. 당시 홈쇼핑 MD의 말을 듣고 기획했던 제품이었는데, 예상보다 16% 정도밖에 안 팔리는 아주 큰 실패를 초래했죠."
이내 박 회장의 목소리는 진중해졌다.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세 가지 원피스 중 하나가 고객들이 전혀 선호하지 않는 제품이었죠."
20년이 넘게 홈쇼핑을 해오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실패였다.
"그때 정말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남의 말을 쉽게 따라서는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 판단이었습니다."
홈쇼핑에서 한 번의 실패는 곧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대량 생산된 제품이 판매되지 않으면 재고로 남아 엄청난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홈쇼핑은 정말 위험한 시장이에요. 성공만을 기대하기 전에, 실패 했을 때 엑시트 할 수 있는 전략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성공은 때때로 그의 기대를 훌쩍 넘어섰고, 실패는 그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늘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리스크를 관리하고, 고객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박 회장은 여전히 홈쇼핑 방송 전의 긴장감과 방송 후의 희열을 기억하고 있었다.
"20년 넘게 홈쇼핑을 해왔지만, 방송이 시작하기 전의 그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도 잊을 수 없죠."
그에게 홈쇼핑은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라, 도전과 성취의 무대였다.
지속 가능한 기업을 향한 목표로 구조 개선 박차
후배 경영자들, 냉정하고 현실적인 경영 마인드 가져야
박인규 회장은 이제 제이에프 글로벌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사업은 영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양도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기업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족이 아니라도 합리적이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물려받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업계의 대선배로서 후배 경영자들에게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대박만을 꿈꾸기보다는, 쪽박이 났을 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패에 대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경영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이는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으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많은 후배 경영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박인규 회장의 지나온 길 38년은 도전과 개척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홈쇼핑 산업의 선구자로서, 시대의 변화를 읽고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먼저 발견했다. 지금도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단순한 성공 이상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의류 시장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후배들에게는 영감을, 소비자들에게는 끝없는 신뢰를 주는 업계의 거인으로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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