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영웅, 혹은 대담한 승부사 - 평창하이그로스 이충용 대표

“작은 야적장에서 시작한 평창하이그로스 업계 대표 기업으로 키워내...
충남고속 인수 등 새로운 사업 과감하게 도전,
최악 건설경기 인재 영입의 기회로 삼을 것”

윤택환 기자 승인 2024.10.01 12:46 | 최종 수정 2024.10.02 10:49 의견 0

사진촬영 - 윤택환 기자

정주영, 이병철 같은 대한민국 1세대 대기업 창업자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한 치의 두려움도 없었다. 위기 속에서 남들이 주저할 때, 그들은 오히려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목표를 쟁취했다. 넘쳐나는 지식과 상식 탓에 안정성과 신중함이 강조되며, 그들의 도전 정신이 점점 흐려지고 있는 요즘, 여전히 자신의 본능을 믿고 거침없이 도전을 즐기는 기업가를 만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평창하이그로스의 이충용 대표다.

초창기 부족한 자본으로 소규모 합판, 각재 판매업으로 시작한 평창하이그로스를 13년 만에 시스템 비계와 동바리 설계 및 임대, 시공까지 아우르는 종합가설재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는, 2022년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가설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적자에 허덕이던 고속버스업체인 충남고속을 인수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 속에 충남고속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그는,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단 2년 만에 회사를 흑자 전환 시키며, 스스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뛰어난 리더임을 증명했다.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던 1세대 대기업 창업주들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이충용 대표. 과연 그의 가슴속엔 어떤 이야기들을 숨겨 놓고 있을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 주식 투자 실패까지 겹치며 최악의 상황, 가족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버티며 다시 일어나

이충용 대표는 삼국지와 수호지 같은 고전 영웅담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인물이었다. 사사로운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듯한 여유 넘치는 태도였지만,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날카로운 통찰력과 촌철살인의 직관을 한순간에 드러냈다. 유머러스하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본질을 꿰뚫는 그 시선은 허허실실, 바로 그 자체였다.

성균관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이 대표는, 한신공영과 롯데기공 등 남들과 다르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경제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가져다 주었다.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을 받은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진 재산 모두를 주식투자로 날려버리며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매달 쌓이는 대출이자에 외벌이 가장으로서의 무게는 끔찍하게 그를 짓눌렀다. 이 시기, 그는 갈 곳도 없이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남산도서관으로 매일 같이 출근했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남산도서관은 식대가 저렴하고 무료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터넷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취업원서를 넣기가 수월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몇 달을 보내고 서울에서는 더 이상 취업이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당장 대출이자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방행을 택한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방 여러 곳을 전전하며 토목회사, 막걸리회사, 사료회사, 공구회사 등, 어떤 곳에서든 닥치는 대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절치부심하며 버텼다.

그렇게 2년 동안 고된 지방 생활 중, 이 대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서울에 있는 가설자재 임대업체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는 가족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과 무능력한 가장으로서의 미안함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다시 고3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 듯, 그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업무에 매진했다. 궁하면 통하는 것이라 했던가? 그렇게 1년 반을 지독하게 일하자, 머릿속에 가설재업의 수익 구조가 서서히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드디어 이 일을 내 것으로 삼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충용 대표의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작은 야적장 빌려 시작한 평창하이그로스,

이중 검수 시스템으로 철저한 안전 입소문으로 확실한 자리매김

사람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철학으로 직원들 동종업계 최고 대우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이 대표는 2012년, 보증금 천만 원과 월세 100만 원짜리 화성시 궁평항 인근 야적장을 얻어 가설재 임대업을 시작했다. 바로 지금의 평창하이그로스다. 사명에 담긴 평창이라는 지명 때문에 그를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는 충남 천안 출신이다. 그는 이렇게 인터뷰 내내 기자의 보편적인 예측을 계속 빗나가게 했다.

"회사 이름을 짓기 위해 북한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던 중, 평창동을 내려다보며 이 지역의 아름다운 지세와 평화로운 분위기에 감명을 받았다. ‘평창’이라는 이름 자체가 평화롭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고, ‘창’자가 들어가는 서울의 지명은 창고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염창동은 소금 창고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평창동은 풍요와 창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회사가 이러한 풍요와 안정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평창하이그로스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이 대표는 이렇게 평창하이그로스 사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가 사명에 담은 의미는 단순히 지리적 상징을 넘어서, 회사의 지속적 성장과 번영이었다. 이런 평창하이그로스의 시작은 소박했다. 소자본으로 시작한탓에 처음에는 인근 빌라나 주택현장에 납품하면서 합판과 각재를 주로 다뤘다. 수 차례 부도의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충용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고 3년간 회사 한켠의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하며 명절날까지 일을 하며 버텨냈다.

“사업 초기 한 700일 정도는 하루도 안쉬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이충용 대표는 덤덤히 말한다.

철근 콘크리트 공사에 필수적인 가설자재는 그저 공사 현장에서 한 번 쓰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용 후 다시 임대업체로 돌아와 수리를 거쳐 재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 작은 결함이라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이 산업에서, 이충용 대표는 남다른 안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평창하이그로스는 초기부터 외부 컨설팅을 도입해 안전 관리와 이중 검수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의 철저한 관리 시스템 덕분에, 평창하이그로스는 단순한 임대업체를 넘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으로 알려지며 업계에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더라도 결국 일하는 사람들의 역량과 충성도가 기업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동종업계 최고의 급여와 복지, 그리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근무 환경을 만들어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였다. "사람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평창하이그로스를 단순한 가설자재 임대업체가 아닌, 현재의 독보적인 위치로 이끌었다.

3년간 대규모 적자였던 충남고속 구원투수로 등판...임기 2년만에 만성 적자 흑자로 전환 시켜, 버스 사업 레드오션이라 얘기 많이 하지만 오히려 높은 가능성 봐

충남고속을 인수한 것은 이충용 대표의 또 다른 도전이었다. 건설 자재 임대업을 기반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던 그는 새로운 영역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충남고속은 당시 대규모 적자와 주주 간 분쟁으로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던 회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드오션이라 여겼고, 더 이상 이 사업에서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얘기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위기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버스업계는 승객 감소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지만, 코로나19가 끝나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을 바탕으로 2022년 과감하게 충남고속의 지분을 인수한 이 대표는, 대표이사로서 2년 동안 회사의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원가 절감에 집중한 결과, 충남고속은 빠르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충용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버스 사업이 레드오션이라 말했지만, 그 안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지속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앞으로 버스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단순히 회사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그의 도전 정신은 충남고속을 다시 일으켜 세웠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큰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진촬영 - 윤택환 기자

향후 최악의 건설경기 예상... 인재 영입의 적기로 보고 과감한 베팅 나설 것

이충용 대표는 올해부터 최악의 건설경기가 올 것을 예상했다. 수주가 급감하고, 설계사무소조차 일이 없는 현 상황을 직시하며, 앞으로 최소 2년에서 3년간은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평창하이그로스는 이미 이 기간 동안 살아남고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먼저, 사업성장을 위해 그동안 늘렸던 금융권 차입금에 대해서는 은행과 협의하여 대부분 분할 변제로 전환시켰고 일부 불필요한 부동산과 동산을 매각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시에, 이 불황기를 인재 영입의 기회로 삼고 있다. "어려울 때 좋은 인재들이 들어온다"는 확신 떄문이다. 그는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불황기 동안 우수한 인재를 확보해 두면, 이후 호황이 왔을 때 그들이 회사를 이끄는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충용 대표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평창하이그로스뿐만 아니라, 업계 내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미 한 중견 규모의 동종업체를 인수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가설자재 임대업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해 사업 확장을 추진하면서도, 수익률이 이를 뛰어넘는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버스업에서도 그의 이런 전략은 눈에 띈다. 이 대표는 레버리지를 활용해 다른 버스회사를 인수하고, 이를 통해 노선을 확장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버스업계는 허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노선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방법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구조를 이해하고, 주위 버스회사들을 인수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버스업계의 1인자 KD운송그룹이었다. 1만대의 버스를 운용하며 하루 만 원씩만 벌어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이 회사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버스사업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이충용 대표는 건설업이든 버스사업이든, 모든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미 중소기업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계획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특유의 냉철한 판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겪어온 모든 시련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자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 굳게 믿어

이충용 대표의 경영 철학은 그가 겪어온 수많은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권고사직 이후 주식투자 실패까지 겹치며 삶의 나락을 경험했던 지옥 같던 기억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었다"며 너털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는 그 모든 일들을 지금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 자산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성공한 이유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로 설명했다. 처음 평창하이그로스를 창업했을 때, 그는 가족을 위해 고향을 떠나 홀로 지방을 돌며 작은 공장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그 시절 그는, 지독한 고독을 견디며 성공한 경영자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고, 그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성공한 경영자들은 하나같이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이라면 혀를 내두를 만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런 열정과 집요함으로 회사를 이끌어, 결국은 커다란 성공을 이룬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그에게 "열정적으로 일하고 집요하게 밀어붙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버틸 수 있었고, 오늘날의 성공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그는 평창하이그로스를 세우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이때 느꼈던 경영자들의 모습에서 배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충용 대표의 인생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최악의 순간 속에서도 그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오히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결국 그는 역경을 딛고 평창하이그로스와 충남고속을 성공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성공한 기업가로 화려하게 거듭났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신념을 그는 스스로 증명했다. 앞으로도 그는 어떤 위기와 마주하든, 기회를 발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의 끝없는 도전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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