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책임감으로 다시 일어선 불굴의 기업인, 동영창호산업 신동진 대표

"IMF 등으로 2번 커다란 실패... 모든 빚 끝까지 책임져,
지금의 내 삶은 모두 하나님 은혜"

윤택환 기자 승인 2024.08.28 09:32 | 최종 수정 2024.08.28 09:38 의견 0
동영창호산업- 윤택환 기자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이던 8월의 어느 날, 파주 조리읍에 위치한 동영창호산업을 찾았다. 이들은 최근 관련 업계에서 창호만이 아닌, 건물 전체를 생각하는 시공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신 대표의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드넓은 통창을 통해 작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뷰가 펼쳐졌다. 지금껏 수많은 기업 대표들의 집무실을 찾았지만, 단연코 가장 멋진 풍경이었다. 과연 창호를 다루는 기업 대표의 집무실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최고의 쇼룸이 아닌가 싶었다. 창밖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경을 뒤에 두고 신 대표와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감사합니다." 신 대표가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겸손함과 깊은 신앙심은 마치 성직자와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인 권유로 창호와 첫 인연, 창호는 창의성 필요

신 대표는 처음부터 창업에 대한 야망을 품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젊은 시절 방황하며 다양한 직장 생활을 거쳤던 그는, 1988년 복층유리 붐이 일어나던 시기에 우연히 아는 형님의 권유로 관련 업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의 첫 공장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2년간 화물차 운전을 포함한 일용직 생활을 해야 했다. "일용직으로 계속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창호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은, 도전과 노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신 대표는 유리와 창호의 차이점을 명확히 했다. "유리는 창의성이 필요 없는 물건이에요. 그냥 벽을 막아주는 역할만 하죠. 하지만 창호는 다릅니다. 창호는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철학이 그를 지금의 성공으로 이끈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1992년, 신 대표는 개인 사업자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사진-윤택환 기자

두 번의 커다란 실패, 신앙의 힘과 책임감으로 다시 일어서

신 대표는 창업 이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큰 실패를 겪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나 지금의 성공을 일구었다. 첫 번째는 IMF 시기였다. 당시 아는 선배와 함께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경제 위기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IMF 때는 서울 시내에 제대로 돌아가는 공사 현장들이 거의 없었어요. 아이를 둔 가장이었기에 명함 500장을 파서 밤낮으로 돌렸습니다. 뚝딱거리는 소리가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죠. 그중 단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그것이 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첫 번째 재기에 성공했지만, 인생은 쉽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그 뒤 더욱 커다란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당시 1년 매출이 40억 정도였는데 한울종합건설에서 20억, 단성사 리모델링에서 4억, 도합 총 24억의 부도를 맞았다"고 말했다. "당시 신용보증기금에 보증을 받으러 찾아갔습니다. 그때 나를 미친 사람처럼 보던 지점장의 시선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절대 회사를 못 살릴 거라고들 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다시 살려냈지요."

그는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직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응원이 어우러진 결과였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책임감으로 버텼습니다. 당시 자재 업체들에게 돈을 못 주게 된 상황이었는데, 그들의 가족을 생각하며 개인 지불각서를 써주고 결국엔 모두 갚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신 대표의 이런 믿음과 책임감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창의적인 발상 추구, 창호만이 아닌 건물 전체를 생각

이제 동영창호산업은 단순한 시공업체를 넘어섰다. 이들은 창호에 관련된 컨설팅과 설계를 포함해, 풍압이나 내진설계까지 고려한 고급화된 시장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기 집을 시공하듯 하라며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강조하고, 모든 작업을 100% 직영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신 대표는 동영창호산업의 대표작을 파주 헤이리의 딸기 하우스와 한길북하우스 사옥 등으로 꼽으며 자신들의 강점에 대해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너무나 멋진 뷰를 자랑하는 그의 집무실 창문 설계는 위쪽엔 넓은 통창을 달고 아래쪽에 여닫이 창문을 배치했다. 들어서는 순간 한순간에 시야가 탁 트이는 창의적인 디자인이다. 또한, 그는 고객의 클레임은 일주일 안에 무조건 해결한다며 책임감 있는 사후관리까지 자랑했다. 이어서, "우리는 창호를 만드는 게 아니라, 건물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합니다. 창호와 상관없는 동선까지도 고려하며, 고객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려 합니다."라고 말해 그들의 성공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진-윤택환 기자


남들의 부족한 부분 채워주는 게 우리의 역할

신 대표는 두 번의 실패에서 다시 일어선 경험을 얘기하며, "모두 하나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의 이런 신앙심과 겸손한 마음은 사업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일에 관해서는 고객들보다 우리가 지식과 경험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그는 이런 이타심으로 동영창호산업이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회사로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과실은 나눠야 한다"고 강조하며, "돈을 쫓아가지 않는다"는 철학을 고수한다고 했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동영창호산업은 직원들에게 업계 평균 이상의 대우를 하며 야근 수당부터 휴가비까지 법적인 근로 조건을 철저히 지키며 직원들의 복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우리 직원들이 기술력이 무척 뛰어나다. 그런데 이익을 많이 남기지 않으려는 나 때문에 더 많은 급여를 못 주는 것이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LX 하우시스로 최고급 창호 시장 진출, 고객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회사 될 것

신 대표는 최근, LG에서 분리된 LX 하우시스의 대리점으로 최고급 시장에 진출했다. 그 성과로 현재 청주의 세레니티CC를 창호공사를 성공리에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는 자신들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며 여전히 마음속의 목표로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는 작은 건물들도 단열까지 신경 쓰는 등 기준이 바뀌고 있어요. 우리는 그 기준에 맞는 최적의 설계를 제공하며, 지금처럼 계속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회사로 나아가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회적 책임 중요,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에 감사

신 대표는 그의 신앙과 철학처럼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고 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연탄을 기부하고, 케냐 에이즈 환자 지원과 사랑의 열매 지원 등 열거하기 힘든 많은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큰일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이렇게 남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하며 손사레를 쳤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과, 사람들을 향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두 번의 큰 실패를 극복하며 동영창호산업을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켜왔다. 오늘도 "우리의 역할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그는 흔들림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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