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양동을 대표하는 헤어샵 '민이랑헤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근육질의 다부진 몸과 잔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김호민 원장이 반겨 준다. 그는 커트부터 작품 머리까지 다양한 미용대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최고의 헤어아티스트다.
김 원장은 미용업계에 몸담아온 지난 24년을 돌아보며,
위기의 순간부터 영광의 순간까지 울고 웃어온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유도선수의 길을 걷다 운명처럼 미용의 길에 들어서
첫인상부터 근육질의 다부진 몸으로 눈을 사로잡는 김호민 원장은, ``고등학교 때까지 유망 받는 유도 선수로 활동했다.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됐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운동을 뒤로하고 생계를 위해 장사에 도전하게 된다.
"옷 장사, 생선 장사 등 다양한 일을 해봤다. 그러다 군대를 갔다 왔다. 제대 후엔 기술직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요리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요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종로의 한 요리 학원을 찾은 그는 예상보다 적은 수강생 수에 실망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다. " 요리학원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옆 건물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걸 보고 '저기는 뭐 하는 곳일까?' 하고 보니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스튜어디스 학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용 학원이었다. 미용학원인줄 알았으면 안 올라갔을텐데. (웃음)"
우연한 시작, `가위만 있으면 평생직업`
미용 학원의 상담 직원은 "가위만 있으면 평생 직업"이라며 김 원장을 설득했다. 그는 "처음엔 미용에 소질이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죽하면 학원 선생님께서 '이 일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 자극받아 하루 9시간씩 연습했다."
결국 피나는 연습으로 두 달 만에 자격증을 따낸 김 원장님은 그 경험을 통해,
"하면 된다, 연습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자산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한다.
그렇게 2001년부터 시작된 그의 미용 경력은 올해로 벌써 24년째다. 이제는 아련할 초보 미용사 시절을 묻자 그는 아래와 같은 기억을 한 토막 들려주었다.
"미용사가 되고 남자 커트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삼청동의 유명한 이발소를 찾아갔다. 그곳 원장님께 커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지만 처음엔 거절당했다. 3일 동안 가게를 청소하고 손님들의 샴푸를 해주며 계속 부탁했다. 결국 원장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남자 커트를 가르쳐 주셨다. 가위질의 기본부터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많은 남자 손님들이 찾아온다.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 온 비극,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아
그의 왼손에는 유난히 커다란 흉터가 눈에 띈다.
"15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고로 손을 크게 다쳤다. 당시 남들하고 똑같이 하면 어떻게 크겠나 하는 마음에 일 하던 미용실에 남아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원장님께서 그 모습이 기특하셨는지 집에 가서 좀 쉬라며 갑자기 보너스로 30만원을 줬다. 거의 내 한 달치 월급이었다.
기분 좋게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택시가 사이드미러로 내 손을 치고 갔다. 그 때 왼쪽 손목과 가운데 손가락이 꺾여 버렸다. 수술을 두 번 하며 관절의 반 이상을 잃었다. 주먹을 제대로 쥘 수 없게 되었다."
미용사로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시 샤기 스타일이 유행해서 머리카락을 꽉 잡을 필요가 없었다. 흘리는 테크닉을 연습하며 다시 일어섰다. 100개가 넘는 가발을 자르며 연습했다. 모친께서도 '정말 지독한 놈'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부상을 딛고 오히려 더 성장했다. 이에 대해 그는,
"손을 다쳤던 것이 오히려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미용의 이론과 기본기를 다시 한 번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테크닉적으로 손놀림이 더 좋아졌다. 정말 간절하게 노력했다." 고 말했다.
김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도 주임 원사님들이 군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며 잡았다"며 웃음을 자아내는 그는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고 덧붙였다.
화려한 수상 경력, 도전 멈추지 않을 것
김 원장님은 각종 미용대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그의 뛰어난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커트 부문에서 4회, 드라이와 컬러 부문 각각 1회, 작품 머리 부문에서 2회 수상하며 총 8회 크고 작은 상들을 수상했다.
"대회 준비와 샵 운영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최소 3-4개월을 준비해야 했다"며, 그는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무려 1,000명 중에 입상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고 말했다.
"남자니까 큰 상 하나는 받아야 하지 않나"라고 웃으며 말한 그는, 코로나 시기에 1년을 준비한 끝에 지난 2022년, 커트 부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여하는 대상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손을 다치고 상태가 좋지 않아 커트 부문에 집중했다."며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화려한 수상경력 중 가장 의미 있는 수상에 대해 묻자 김 원장은,
2021년에 수상한 `작품 머리 부문 상`을 꼽으며, "손을 다치고 포기했던 헤어 아트 스타일을 다시 도전해 큰 상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아픈 것을 참아가며 맹연습했다. 완성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상까지 받게 되어 더욱 값졌다. "고 말했다.
강남 못지않은 최고의 서비스에 자부심 느껴
김 원장님은 "수상 후 단골 고객들이 자랑스러워하며 주위에 많이 소개해준다."며, 수상이 미용실 운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상을 받으면 오랜 단골손님들의 스타일을 바꿔 드린다. 그들이 새 머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는 것이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민이랑 헤어'의 베스트 서비스로 기본 커트와 함께 제공되는 모발 및 두피 마사지 서비스를 꼽았다. 또한 단골고객들에게는 시술 시간이 남으면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는 다양한 미용 제품과 약품을 갖추고,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염색, 펌 뿐만 아니라 커트 고객에게도 고급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사용하여 마무리한다. 이를 위해 구비해 놓은 고급 샴푸만 10가지가 넘을 정도다.
이렇게 놀라운 서비스에 힘입어 민이랑헤어에는 많은 단골 고객들이 찾아온다. 멀리서 찾아오는 고객들도 많은데, 삼청동에서 오는 대학 교수님은 우연히 앞을 지나다 방문한 후 지금까지 6년째 찾아오고 있다. 그 외에도 용산, 마포, 파주, 철산, 부천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멀리 강원도 홍천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고객도 있다.
1000만원 상당의 전문 두피진단기 도입, 차별화된 탈모 케어 서비스 선보일 것
김 원장은 최근 국내 경기 침체로 많은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이 저가 염색방이나 셀프 염색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아쉬워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1,000만 원에 가까운 거액을 투자해 두피진단기를 도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탈모로 고민하는 중장년층 고객들을 위함이다.
김 원장은 이번에 도입하는 두피 진단기가 수분량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전문 장비라고 소개했다. 고객의 상태에 따라 맞춤 케어를 제공하며, 건조한 두피에는 특화된 헤드 스파를, 탈모가 심한 고객에게는 메다비타 제품으로 케어를 한다. 메다비타는 강남의 피부과에서도 사용하는 제품이다. 그는 “동네 헤어샵에서 강남 같은 서비스를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해 고객들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하며, 이 같은 파격적인 탈모 케어 서비스는 선착순 30명에게만 제공한다고 밝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용업계
김 원장은 벌써 24년차 미용사로 업계의 거센 변화를 몸소 경험했다.
"예전에는 고객들이 막연한 말로 주문했다면,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정확하게 스타일을 요구한다." 며, "인터넷의 발달로 헤어샵 홍보 문화도 많이 변화했고, 관련제품의 질도 많이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고객들이 무조건 빠른 시술을 원하는 경향에 대해 “빠른 서비스를 원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펌 작업을 서두르면 충분한 테스트를 할 수 없고, 영양 처리를 충분히 하지 못해 고객의 머릿결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미용 트렌드에 대해서는 "요즘은 남자분들이 오히려 더 머리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다. 가일컷, 드로컷, 플랫컷 등 바버샵들이 많이 생기며 남성 고객들의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펌이나 염색도 남자 고객들이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고 밝혔다.
그는 변화하는 미용업계 근로문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급여도 낮고 휴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는 최저임금제 등의 영향으로 스탭과 아티스트의 급여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초보 디자이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까다로워졌고, 급여차이가 크지 않다보니 굳이 어려운 도전을 하지 않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10년 뒤에는 오히려 헤어샵 숫자가 많이 감소할 것 같기도 하다."
김 원장은 미용업계로 진출하려는 젊은 후배들에게는,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샵을 내는 것을 말리고 싶다."고 조언한 뒤,
"가게 하나를 운영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샵을 열게 되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미용 자체에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 샵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민이랑헤어 운영
김 원장은 민이랑헤어를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으로 '정직'을 꼽았다.
"예약판에 '정직하게 돈 벌자'고 크게 적어 놨다. 고객들의 오해가 없도록 모든 약을 고객들 앞에서 타고, 시술 전에는 정확하게 요금을 고지한다."고 설명했다.
24년 전 우연한 계기로 가위를 잡은 그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노력이 있다면 어떤 역경이든 이겨내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길을 걸어왔다.
그런 김 원장은 이제 후학 양성을 위해 강사 자격증 취득과 미용장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용장은 10년 이상 경력이 필요한 최고의 면허다. 취득이 매우 어렵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는 또, 작은 목표로는 가양동 주변에 미용실을 1-2개 더 내는 것이라며, "가양동에서 머리 잘 자른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용사, 10년 걸리는 전문직으로서 정당한 대우 받아야 할 것
마지막으로 김 원장님은 서비스 금액의 현실화와 미용사들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인건비 등 여러 비용은 올랐지만 서비스 금액은 20년 전과 차이가 크지 않다"며, " 제대로 된 미용사가 되려면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 또 우리나라 미용사들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 미용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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